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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anJo's Curiosity
박물관, 미술관, 라키비움

19세기 미술관의 고민: 리얼리즘과 인상주의의 등장

by 후안조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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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미술사와 박물관은
미술을 역사화[歷史化]했다.
미술작품에 있어서 최고의 영예는
역사적 가치를 획득하는 일이었다.

미술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역사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19세기 유럽 각국의 아카데미 화단은
역사화(歷史畵)에 주력하고 있었다.
동시대 작품으로서 박물관에 걸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역사화뿐이었다.
 

사진: Unsplash 의 Andrew Neel

 
그러나 이미 19세기부터
이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드세게 나타났다.
이른바 미술의 '탈(脫) 역사화' 경향이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다.
 
하나는 미술의 정치화로서,
프랑스 화가 쿠르베(Gustave Courbet)의 경우처럼
미술이 사회현실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하려는 경향이었다.
이는 흔히 '리얼리즘(realism)'이라고 불린다.
 
다른 하나는 미술의 더욱
극대화된 심미화(審美化)로서,
'인상주의(impressionism)'에서
가장 극명한 표현을 얻는다.
 
모든 사회, 정치적인 맥락을 떠나
감각에 직접 와닿는 순간의 아름다움
포착하려고 한 이 새로운 유파는
날로 귀족화되어가는 상층 부르주아지에
반(反)하여 소박한 일상생활을 구가하던
'쁘띠 부르주아지’의 취향에 잘 부합했다.
 

고흐의 해바라기: wikipedia

 
인상주의는 '역사'의 부담스런 짐을 내려놓고
세상 만사가 펼쳐 보이는 변화무쌍한
‘인상’들을 찾아 나섰다.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유럽 예술은
이후 '모더니즘'이라는
개념 안에 포괄될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다.
 
인상주의뿐만 아니라 미술과 공예의
재결합을 추구했던
'아르누보(art nouveau)'나
영국의 '공예(artcraft) 운동' 등은
미술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낳았다.
 
이제 새로운 미술은 역사적인 가치에
매몰될 필요가 없어졌고
이에 따라 폐쇄적인 미술관의 전시실 대신 
상업화랑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아갈 수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 사진: Unsplash 의 Birmingham Museums Trust

 
결국 미술에 있어서 미술관의 독점적 지위는
상실되어갔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당연히
박물관의 성격과 구조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의 일부 박물관들은
이제 좁은 미술관의 틀을 벗어나
대중들의 일상적 삶에 접근하려고 시도하였다.
 
따라서 '순수 미술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친근한 공예품도
점차 박물관의 수집목록에 기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박물관들은
변화의 요구 앞에서 주저했다.

세기말의 유럽 박물관들은
무엇보다 인상주의 작품의
수용 여부를 놓고 심한 갈등상황에 빠져들었다.
 
특히 정치적으로 극히 보수적이었으며
정신적으로 역사주의의 요람이었던
독일에서 갈등은 가장 첨예한 양상을 띠었다.
...
 
- 전진성 지음, 2004, 『박물관의 탄생 |
살림지식총서 87』, 살림, 66~67쪽.
 
전진성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에서
학생들에게 역사와 서양 사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의 이론적 원리와 20세기 독일 지성사 및
문화사를 연구해 왔으며,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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