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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anJo's Curiosity
박물관, 미술관, 라키비움

박물관 유물 이름이 너무 어렵다고요?

by 후안조 20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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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명을 뭐라고 불렀든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때 평생 함께 할 이름을 새로 짓는다.
더불어 출생 일시와 장소도 신고한다.
 
출생신고를 마쳐야 국민으로 인정하는
주민등록번호가 나온다.

유물도 사람과 비슷하다. 
 

사진: Unsplash 의 Matteo Vistocco

 
박물관으로 오면 새로운 이름,
즉 박물관의 이름 짓는 방식에 따라
공식적인 이름과 일련번호를 받는다.
 
일련번호는 박물관의 자체 분류기준에 따르는데,
유물의 나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박물관에 들어온 순서이다.
 
이 일련번호는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처럼
고유한 번호이다.
사람들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니지만,
유물은 아예 자기 몸에 유물 번호를 지닌다.
일종의 문신이다.  ...
 

사진: Unsplash 의 Cody Black


그런데 유물이 세트로 구성되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번호를 부여할까?

만약 세 점이 한 세트로 이루어졌다면
첫 번째는 ㅇㅇㅇㅇ(3-1)로 표시하고,
나머지도 같은 방식으로 번호를 부여한다.
 
박물관 전시실에서 우연히 유물의 뒷면이나 모서리에
적힌 숫자를 보았다면 그게 바로 유물 번호다.
 
청자상감운학문 매병
박물관에서 유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유물을 드러낼 수 있는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청자상감운학문 매병, 사진 : wikipedia

 
'청자상감운학문 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국보 68호)'을 예로 들면 이렇다.
청자는 도자기의 종류, 상감은 문양의 기법,
운학문은 주요 문양인 구름과 학, 매병은 그릇의 종류다.
이 내용을 만족시키는 유물은 이름이 똑같다.
 
이름을 지을 때는 사람 이름과 달리
가치 판단이 들어가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예외가 있다면 백자 달항아리나 일부 그림 정도다.
달항아리는 생긴 모습이 달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한문으로 표기할 때
백자월형호(白磁月形壺)라고
하지 않고 백자호(白磁)라고 쓴다.
 

백자대호, 사진 : wikipedia


유물의 이름 짓기는 늘 신중해야 한다.
사람도 이름을 바꾸려면 까다롭듯
유물도 이름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유물의 용도나 무늬의 내용, 재질이 새로 밝혀지거나
관람객이 유물의 이름을 암호처럼 어렵게 느낄 때
이름을 다시 검토한다.
그러나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바꾸더라도
그건 전시실의 이름표에 한정되고
공식적인 이름은 대부분 그대로다.

관람객이 유물의 이름을 보고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조합식 우각형파수부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국보 228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같은 이름이 대표적이다.
 
'조합식 우각형파수부 호(組合式牛角形把手附壺)'를
풀어 쓰면 소뿔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라는 뜻이다.
나머지 셋은 유물 자체에 있는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것인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를
풀어쓰면 이렇다. '혼일'은 하나로 어우러졌다,
'강리'는 땅, '역대국도'는 대대로 이어 내려온
여러 나라들의 수도, '지도'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이름의 뜻을 알고 나면 이 지도가 다르게 보인다.
지도에 찍힌 붉은색 점들이 단지 점이 아니라
옛 수도를 표시한 점들로 인식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관람객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일부 유물의 이름을
한글로 풀어 썼다.

예를 들어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말탄 사람 토기'라고 표기했다.
 

성덕대왕신종, 사진 : wikipedia



간혹 사람들은 유물의 이름보다 이름표에도 없는
별명에 더 솔깃해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들어서면 첫눈에 보이는 유물이
'성덕대왕신종(국보 29호)'이다. 그
 
런데 성덕대왕신종이라고 하면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에게
에밀레종이라고 하면 대개 고개를 끄덕거린다.
사람들에게 이 유물은 비극적인 설화가 얽힌
에밀레종이지 무미건조한 성덕대왕신종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 종의 공식적인 이름이 성덕대왕신종이고
유물 앞 이름표에도 이 이름이 적혀있지만
사람들은 이 종을 너나 할 것 없이
에밀레종이라고 부른다.
 
- 박찬희 지음, 2021, 『박물관의 최전선』,
빨간소금, 108-112쪽.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대학에서 역사를,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하고
박물관에서 일했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만나고
사람들과 박물관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쓴 책으로 『박물관의 최전선』,
『구석구석 박물관 1』,
『아빠를 키우는 아이』, 『몽골 기행』,
『놀이터 일기』가, 함께 쓴 책으로
『두근두근 한국사 1, 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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