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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anJo's Curiosity
박물관, 미술관, 라키비움

내 평생 발굴에서 안 나와야 할 유물이 나왔다

by 후안조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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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천마총 천마도 장니(천마도) 발굴기

 

구술: 김정기 - 전 국립박물관 고고과장, 한림대 교수

 

천마총에서는 '천마도장니'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직접 발굴하셨습니까?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天馬塚 障泥 天馬圖) [국보], 출처: 위키백과

 

김정기: 그건 나 혼자서는 못하죠.

그때는 나와 네 사람이 같이 발굴했는데

만약 혼자 발굴했으면 다 깨 버렸겠지요.

그때 이야기를 일본 책에 썼을 거야.

 

내 평생 발굴에서 안나와야 할 유물이 나왔다고

한탄했던 것은 '천마도장니*'뿐이었어요.

 

   * 장니는 말을 탄 사람이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는 기구다.

 

왜냐하면 '천마도장니'는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포개어

누빈 판 위에 그린 건데, 이게 유기물이잖아요.

천년동안 습기가 많은 땅 속에 뭍혀 있었던 건데

이것이 갑자기 건조되면 그대로 싹 가루가 되어서

흩어질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말 이것은 안 나와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차마 그 말은 못했지요.

 

발굴현장, 터키 아나톨리아 코니아

 

어쨌든 그때 목공예품을 디자인하는 유문룡씨가

조사원으로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 사람이 그림을 잘 그렸으니까 빨리

천마도 장니(말다래)를 그리라고 시켰어요.

그리고 다른 직원에게는 사진을 찍으라고 시켰지요.

또 한 사람에게는 그림이 무슨 색인지 하나하나 적으라고

시켰는데 내가 보고 있는 중에도 천마도가 건조되어서

표면의 깨진 금이 쫙 커지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어서 물에 적신 화선지 여러 장을

가져와서 천마도를 덮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한것이 폭 3센티미터, 길이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대꼬챙이를 20개 가져오라고 시켰어요.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중요한 유물은 없으니까

그림 아래에 될 수 있는대로 깊이 꽂으라고 시켰지요.

...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미리 '천마도장니'의 보존을 위해

보존처리반을 대기시켰고 운반을 위해서 차를 두대 준비했어요.

 

천마도는 그 자리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상자에 물을 흠뻑 머금은

솜을 깔고 미리 소독한 화선지 여러 장과 천마도를 들어올리기 위해

밑에 받친 켄트지와 베니어판을 함께 포장해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차를 두 대 준비한 이유는 차 한 대가 고장날 수 있으니까

따라가면서 교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 평생 발굴생활에서 가장 겁났던 발굴이고,

그것이 출토된 것을 마음속으로 원망하며 낙담했으나

그래도 그것을 그렇게 수습하고 나니까

이제 살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 김정기 교수, 출처: 강원도민일보

 

김재원 외 지음, 2009, 『박물관에 살다 - 한국 박물관 100년의 사람들,

동아일보사, 112-114.

김재원

1909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

1934년 독일 뮌헨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5년 초대 국립박물관장으로 임명돼 25년간 재임하면서

국립박물관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했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1990년 별세했다.

 

김정기

2015년 별세

일본 메이지대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공학 박사를 받았다.

1959년 귀국해 국립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경주 감은사탑

조사작업을 맡으면서 국내 유적 발굴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장(1969년)과 초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75년~87년)에

오랫동안 봉직하면서 나라를 대표하는 대규모 고대유적과

고건축물에 대한 발굴 복원 작업을 도맡아 이끌었다.

숭례문 해체복원(1960년대 초반), 불국사 복원(70년대 초반)에 이어

경주 천마총(74~75), 황남대총(73~75), 황룡사터(76~83), 익산 미륵사터(80년대) 등

기념비적인 고대 유적들을 발굴, 조사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장 퇴임 뒤에는 문화재위원과 한림대 사학과 교수,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조사단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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