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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anJo's Curiosity
책 읽기, 글 쓰기

심청이 아버지는 왜 잔치가 끝날 때 왔을까?

by 후안조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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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농담(스토리)이라도 어떤 사람이 하면 재미있는데 다른 사람이 하면 따분하다.

왜 그럴까?

 

말하는요령(스토리텔링)의 문제다.

...

어떻게 하면 노련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까?

 

(1)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2시간짜리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강 1시간 45분쯤이 클라이맥스일 거라고 짐작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그렇다.

400쪽짜리 소설을 펼칠 때에는 350쪽 부근이 절정일 거라고 기대한다.

...

우리는 처음 만난 상대의 눈, 코, 입의 위치와 크기와 상대적인 비례를

따져본 뒤 '저 사람 잘생겼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뜸을 너무 오래 들이네, 군더더기가 너무 많네, 뒷심이 부족하네,

왜 이렇게 갑자기 끝나나, 하는 반응은

이야기의 길이와 배치에 대한 불만에서 온다. 

 

 

(2) 다짜고짜 시작한다

"지금부터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께..."하고

말을 꺼내는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적이 과연 있던가?

 

훌륭한 이야기꾼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불쑥 시작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동물이고, 아주 바쁘거나

뭔가에 몰입해 있는 상태가 아니면 거의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태세가 되어 있다.

특히 이미 자리에 앉아 책을 편 독자를 상대로

펼칠 이야기라면 걱정할 게 없다.

그냥 다짜고짜 어떤 장면 한가운데서 시작해도 된다.

...

반면 결말은 사람들의 기대보다 반 발 앞서서 마치기를 권한다.

더 극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3) 먼저 웃지 않는다

상대보다 먼저 웃거나 울면 안된다.

...

소설을 쓸 때도 그렇다. ...

절정의 감흥은 논리가 아니라 정서의 폭발에서 온다.

...

심청전에서 부녀가 만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심청이 인당수에 빠질 때와 비교하면 큰 위기라 할 게 없다.

...

심청이 아무리 가슴을 졸여도 심학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잔치가 끝날 때가 돼서야 겨우 나타난다.

기쁨이건 슬픔이건 뭔가를 제대로 터뜨리려면 폭발 직전까지

최대한 꽉꽉 눌러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말이 아무리 밝은 해피엔딩이라도 주인공이 쓰러지고

무너질 때에는 시치미를 뚝 떼야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4) 호흡을 조정한다

사실 장편소설이나 장편영화에서 정서가

딱 한 번만 폭발한다면 좀 심심하다. ...

유능한 코미디언들은 청중에게 웃음을 터뜨릴 시간을 준다. ...

 

노련한 작가는 그렇게 이야기의 호흡을 조절해서

절묘하게 서스펜스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

 

작가가 답을 미루면 긴장과 불안이 생긴다.

아예 거기서 챕터를 마치거나 다음 연재분으로

전개를 미루는 기법을 '클리프 행어'라고 부른다.

찰스 디킨즈의 소설에서 이름이 나온 유서깊은 테크닉이다.

 

 

(5) 강조하고 과장한다

강조할 부분을 강조하고 과장할 부분을

과장하는 것은 소설가의 특권이자 의무다.

그런데 어떻게? ...

인물의 고통을 강조하고 싶으면 그의 표정을 보여줘라.

 

독자의 본능적인 심리를 이해하면 어떤 방향으로

상황을 과장해야 하는지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외줄타기 곡예를 더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방법은 뭘까.

줄의 높이를 높이면 된다.

줄 아래 안전그물 대신 악어떼나 화염이 있다고

하면 독자들은 더 간을 졸일 것이다.

 

(6) 분명하게 전달한다

아무리 세상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발음이 안좋은 사람이

웅얼웅얼 읊는 바람에 청중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면 웃음은 터지지 않는다.

 

소설의 서술도 그렇다.

 

무슨 상황을 묘사하는 건지 문장들이 명료하게

받쳐주지 못하면 스토리텔링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다.

이때 작가의 개성적인 문체는 재담을 더 맛깔나게 하는

이야기꾼의 독특한 표현이나 몸짓에 비유할 수 있겠다.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2020, 『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한겨레출판, 174-182쪽.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연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다른 작품들로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심훈문학대상, SF어워드 우수상 등을 받았다.

뜻 맞는 지인들과 지식공동체를 지향하는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www.gmeum.com)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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