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실재의 세계에서 가해자였던 이들이 상상 속
기억의 세계에서 희생자로 둔갑하는 일은 흔하다.
이탈리아인들도 자신들을 파시스트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파시즘은 바깥에서 강요한 정치 이념일 뿐, '진정한' 이탈리아에는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이념이라고 여겼다.
그들에게 이탈리아 파시즘은 독일 나찌즘과 비교하면 유순하기 짝이 없고,
모든 도덕적 끔찍함이나 물리적 잔학행위는 독일군이나 마약중독자,
동성애자, 사디스트들이 저지른 것이었다.
한 마디로 '좋은 이탈리아인'과 '나쁜 파시스트'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며,
좋은 이탈리아인인 보통 사람들에게 파시스트의 잔학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죄를 추궁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은 이렇게
과거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지워졌다.
이탈리아의 뉘른베르크는 애당초 불가능했던 것이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의 경우 가해의 역사가
피해의 기억으로 바뀌기에 더 유리한 조건이었다.
일본인이 인류 역사에서 유일한 원자폭탄 희생자였다는 자명한 사실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희생을 자국의 전쟁범죄와 가해행위를
상쇄하고도 남는 희생으로 여기게끔 만들었다.
그들에게 아우슈비츠와 더불어 히로시마는 인간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범죄행위의 상징이었다.
때마침 도쿄 전범재판의 인도인 판사 라다비노드 팔(Radhabinod Pal)은
미국의 원폭 투하야말로 나치의 전쟁범죄에 가장 근접한 잔학행위하고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은 아우슈비츠와 더불어 절대 악의 상징이었다.
...
그래서 일본인들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기억하는 일은
난징 대학살이나 일본군 '위안부', 연합군 포로학대 등 일본군이 저지른
잔학행위를 잊어버리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 전후 일본의 기억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미국과 일본 양국의 전쟁으로
단순화되면서 아시아 이웃들에게 저지른 일본의 침략행위는 쉽게 잊혀졌다.
독일의 보통 사람들이 그랬듯이, 많은 일본인들은 자신은 군부 지도자들에게
속은 순진한 보통 사람들일 뿐이며, 오히려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오리엔탈리즘이 [일본인들이] 순진한 희생자라는기억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그들의 눈에 일본인은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는 봉건적 습성에 젖은 노예였다.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군부 지도자들을 따랐을 것이니
그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
전쟁에 대한 기억 속에서 이토록 희생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가해자들의 모습은
희생자라는 지위가 주는 도덕적 안도감이 얼마나 큰지,
그래서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임지현 지음, 2019, 『기억전쟁-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
휴머니스트, 102-106쪽.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소장.
유럽 지성사·폴란드 근현대사·지구사 연구자.
전 세계의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 연구자들과 함께 초국가적
역사의 관점에서 일국사 패러다임을 비판하는 작업을 주도해왔다.
현재는 역사에서 기억으로 관심을 이동하여 인문한국 프로젝트인
‘지구적 기억의 연대와 소통: 식민주의, 전쟁, 제노사이드’를
주도하며 기억의 연대를 통한 동아시아의 역사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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