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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anJo's Curiosity
역사, 문화, 문학, 예술

공예의 가치, 예술의 가치

by 후안조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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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에게 목공은 과정에 불과할 뿐 목적이 아니다.
목수의 목적은 유용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아닌 타인의 유용함을 파악하고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에서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밖에 없다.

 


목수가 손에 연장을 들고 나무를 깎기 시작할 때는 이미 전체 과정의 70%는 끝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실제 나무를 만지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대강 30% 정도의 변경과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 30%가 목수의 가구를 디자이너나 가구회사의 그것과 구별된는 정체성을 갖게 하지만,
연장을 들기 전 이미 큰 그림은 잡혀있는 것이다.

내가 나만의 서재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별 볼일 없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되었을 것이다.
내게 서재와 공방은 별도의 공간이 아니다.
서재는 공방의 연장이며, 공방은 서재의 확장이다.
...

 


기존의 가치를 뒤집어 전복적인 미적 충격을 주는 데 예술의 목적이 있다면,
공예의 목적은 기존의 가치를 받아들여 더 쓸모있고 아름답게 만들려는 데 있다.
이러한 공예의 미학을 나는 '더 잘 만든 것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목적에 따라 예술은 아카이브의 전복에 집중하고, 공예는 아카이브의 발견을 몰두한다.
...

공예는 오랫동안 공부나 이론의 대상이 아니었다.
생활과 함께 숨 쉬는 것 혹은 생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공예는 생활에서 쫒겨났다.
공예가 살아 숨 쉬던 자리에는 디자인과 공산품이 자리 잡았다.

 


생활에서 밀려난 공예는 정처가 없었다.
현대의 공예가 독자적인 길을 확보하지 못한 채
한쪽 발은 예술에 한쪽 발은 디자인에 걸치며 모양 사납게 우왕좌왕하는 것은
생활을 떠난 공예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공예가 생활로, 원래 있던 그 자리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요하다.

 


생활이 자신의 원래 집이고 고향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예가 없는 생할이란 황폐하고 품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공예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 깎는 목수가 연장 옆에 책을 두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윤관 지음, 2017, 『아무튼, 서재, 제철소, 10-13.

목수木手.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치가나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기자나

세상을 구하겠다는 활동가가 아니라 그저 작은 소용이 닿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작가나 예술가가 아닌 그냥 목수 아저씨.

이름 뒤에 붙는 목수라는 명칭에 만족한다.

소명 없는 소소한 삶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낮에는 김윤관 목가구 공방&아카데미에서 가구 만들기와

예비 목수 양성에 힘쓰고, 저녁에는 서재에서 텔레비전을 껴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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