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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 문학, 예술

양복에 흰 양말을... 작가 카뮈는 패션 테러리스트?

by 후안조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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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 문단의 총아, 행동하는 지성, 출간 즉시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나의 롤모델이다.

1957년 44세의 카뮈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한림원의 설명처럼

"우리 시대 인간의 정의를 탁월한 통찰과 진지함으로 밝힌 작가"라서... 는 아니고(감히 언감생심),

카뮈 전기에서 우연히 읽은 한 대목에 반해 그를 마음 속 패션 구루로 모시게 되었다.

나를 감동케 한 대목은 이랬다.

 

     어머니가 결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묻자 카뮈는 하얀 양말 한 다스라고 대답했다.

     당시 카뮈는 흰 양말만 신고 다녔다.

         _ 허버드 R. 로드먼, 카뮈, 지상의 인간

 

 

인생 최초의 인륜대사를 앞둔 스물한 살 카뮈의 선택은 양말이었다!

이태리제 고급 원단으로 재단한 맞춤 양복 한 벌이 아니다.

값비싼 구두나 시계 같은 예물도 아니다.

살림에 보탬이 될 만한 세간도 아니다.

고작 양말 한 다스였다.

그것도 관리가 쉽지 않은 순백의 양말.

 

앞서 인용한 전기에 따르면, 카뮈는 열 살 때부터 이미 옷으로 고상한 멋을 풍겼다고 한다.

이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다.

멋쟁이인 줄은 알았지만 소년 시절부터 고상함을 풍겼을 줄이야.

 

그보다 열살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부조리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 것도 아니고,

"옷으로 고상함을 풍겼다"가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대작가 카뮈의 전기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만큼 중요한 정보일 줄이야.

 

1957년 알베르 카뮈, 출처: 위키백과

 

아무튼 카뮈의 친구 대부분은 그를 멋쟁이로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뒤이어 중요한 증언이 나온다.

개중에 관찰력이 좋은 한 친구만이 카뮈의 수트가 

엷은 회색 싱글 한 벌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카뮈는 가난한 알제리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빈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노동자들의 거리에서 성장했다.

결혼할 즈음에도 전차 삯을 아끼기 위해

일터까지 5킬로미터를 걸어서 다닐 정도로 곤궁한 처지였다.

 

 

그러나 가진 거라곤 단벌 슈트뿐인 가난한 사람에게 세상이 으레 '요구'하는 남루한 행색을 카뮈는 비켜갔다.

깨끗이 솔질한 낡은 슈트에 항상 새하얀 양말을 갖춰 신음으로써 말쑥하고 우아한 멋을 발산했다.

가난과 남루함은 마땅히 짝을 이루어야 하는 한 쌍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듯이.

 

깨끗한 흰 양말에 포인트를 준 카뮈의 시도는 효과적이었다.

그가 단벌신사라는 걸 눈치채기는커녕 모두가 그를 멋쟁이라고 여겼으니 말이다.

 

알베르 카뮈, 출처: 나무 위키

 

결혼 선물로 흰 양말 한 다스를 원했던 젊은 카뮈.

그에게 흰 양말이란 그저 비범한 패션 센스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을 터다.

 

가난해도 얼마든지 우아할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주머니 사정과 관계없이 자신의 삶에 매너를 지키겠다는 의지,

아마도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구달 지음, 2018, 『아무튼, 양말, 제철소,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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