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문학, 예술

유현준 교수가 말하는 건축과 권력의 관계

후안조 2024. 2. 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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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은 예부터 교회나 왕 같은 종교적 혹은
정치적 권력을 상징하기 위한 건축적 요소였다.
 
이유는 돔 건축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돔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돔 모양으로 나무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나무 구조체 위에 콘크리트나 돌로 돔을 쌓아 올리고
공사가 완료되면 나무틀 구조체를 철거한다.
 

판테온, 사진: Unsplash 의 Evan Qu


이렇게 비용이 들다 보니
당대 사회의 최고 권력자가 아니면
가질수 없는 건축 공간이 돔이었다.
 
돔의 도시로 유명한 로마에는 '판테온'의 돔과
'성베드로 성당'의 돔이 있는데,
고대 로마의 황제나 르네상스 시대 교황 같은
당대 최고 권력자들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후 시대가 바뀌었으나 돔은 계속해서
국회의사당 같은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에 사용되었다.
여의도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에도
돔이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 포스터는
돔을 과거 형태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절대 권력의 상징인 돔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고
그 안에 경사로를 넣어서 베를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만들었다.
 
원래 최고 권력자의 시선은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사진: Unsplash 의 Courtney Cook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가장 높은 곳에서는 가장 넓은 공간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넓은 공간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공간을 시각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가 골프장 티박스에서 넓은 잔디밭을 바라보면
비어 있는 1만 평 정도 되는 자연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
비싼 돈을 내고 골프를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 올라가면
도시 건물 위의 빈 공간을 모두
시각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
그래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권력자의 시선이다.
 

판옵티콘: panopticon

 
두 번째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 때문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아래에 있는 사람을 감시할 수 있다.
 
반대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은
그대로 노출하지만 정작 위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없다.
그래서 펜트하우스가 가장 비싼것이다.
펜트하우스에서는 원할 때 언제든 내려다볼 수 있지만
낮은 층에 사는 사람은
높은 층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사진: Unsplash 의 Pedro Kümmel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된다.
정보의 비대칭은 권력의 비대칭을 뜻한다.
그런 면에서 '에펠탑'은 근대 사회의 상징이다.
 
'에펠탑'은 당대 신기술인 철골 구조를 이용해서 만든
3백 미터가 넘는 높은 탑이다.
그리고 그 꼭대기까지 시민이면 누구나
엘리베이터라는 신기술을 이용해 올라가게 했다.
 
'에펠탑’은 최고 권력자의 시선을
일반 시민에게 선물한 것이다.
근대 프랑스 사회가 시민 사회라는 것을
공간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에펠탑'이다.  ...
 

사진: Unsplash 의 derek braithwaite



'독일 국회의사당'의 돔을
전망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곳에 올라가는 시민들에게 베를린 시내를
내려다보는 시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에펠탑'처럼 시민이 주인인 사회라는 것을
선언하는 공간이다.
그뿐 아니다. 전망대에 있는 사람들은
도시만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에 있는 국회 회의장도 내려다볼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을 감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치 편의점 주인이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는
카운터 위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한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국회의원이 졸거나
허튼짓을 하기 정말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의 완성을 보여 주는
통쾌한 건축 디자인이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 유현준 지음, 2023,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을유문화사, 140-143쪽.
 
유현준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는 인문 건축가.
건축가는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정리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화목한 건축으로
관계와 사회를 바꿔 나가고 있다.
 
또한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하면서
방송 출연 및 유튜브 〈셜록 현준〉을 통해
공간과 건축 이야기를 쉽게 전하고 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이 만든 공간』, 『공간의 미래』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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