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李白)의 대표적인 송별시 - 벗을 보내며
벗을 보내며 送友人
詩: 이백 李白
푸른 산은 성 북쪽으로 비껴 있고
하얀 물은 성 동쪽으로 돌아 흐른다.
이제 헤어지면
그대는 정처 없이 홀로 만리 길 가리.
뜬구름은 나그네의 마음이요
지는 해는 벗의 심정이라.
손 흔들며 떠나가니
짝 잃은 말도 히이잉 우네.
靑山橫北郭(청산횡북곽)
白水繞東城(백수요동성)
此地一爲別(차지일위별)
孤蓬萬里程(고봉*만리정)
浮雲遊子意(부운유자의)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
揮手自玆去(휘수자자거)
蕭蕭班馬鳴(소소반마*명)
* 孤蓬(고봉) : 뿌리뽑힌 다북쑥은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므로 흔히 홀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떠나가는 친구를 의미.
* 班馬(반마) : 대열에서 떨어진 말
송별시의 새로운 정취를 열었다고 평해지는 시이다.
푸른 산, 맑은 물, 붉은 석양, 흰 구름이 어우러져
색채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데다
외로운 말이 길게 우는 형상을 결합시켜
이별의 장면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것이 더욱 신선하다.
대구와 율격을 정확하게 지킨 이백의 대표적 율시이다.
* 五言律詩(오언율시): 율시는 한시 형식의 하나로
4운(韻) 8구(句)로 된 근체시(近體詩)로서,
1행(1구)이 5자로 이루어진 5언율시
그리고 7자로 이루어진 7언율시가 있다.
율시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띄고 있으며
각 단계마다 2구로 이루어진다.
신하윤 엮음, 2002, 『이백 시선(李白詩選)
- 중국시인총서" 당대편(唐代篇)』,
문이재, 30-31쪽.
이백(李白, 701∼762), 시선(詩仙) 이라고 불리며,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두보(杜甫)와 이백은 한시의 양대 거장으로서
‘이두(李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20대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가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친척 이양빙(李陽冰)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임종하였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