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트롯' 으로 코로나 시기를 이겨냈습니다.
평생 들은 것보다 많은 트로트곡들을
집중적으로 들으며 지낸 시기가 기억납니다.
2020년 봄, 팬데믹이 심각하게
번져나가던 때였습니다.
카페에도 갈 수 없고, 식당도 일찍 문을 닫고,
확진이 되면 어디를 다녀가서
누구를 만났는지가 공개되며
비난받기에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운 때였습니다.
겨울 한 달을 집에 칩거하며
마감한 원고의 출간은 무기한 미뤄지고,
아이디어를 써보낸 광고 론칭이 취소되면서
돈도 해명도 사과도 받지 못했어요.
질병에 감염되거나 사망하거나
직장을 잃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제 처지가 특별히 힘든 것도 아니었죠.
다만 갑자기 많아진 시간이 어색해
밤마다 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을 봤습니다.
제가 특히 열광했던 무대는 태권도를 하며
노래 부르는 출연자의 예선전이었어요.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하는 노래를 부르며
동시에 무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공중제비돌기를 이어가는데
너무 힘차서 그대로 돌면서
바다까지 건널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분명 하체가 더 높은 곳에 있고
머리가 아래에 있는 순간에도
그 상태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멈추지 않는
출연자를 보면서
그 폐활량이, 코어 근육이
너무 감탄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그때처럼 자주 술을 마시지도 못하고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몰아서 보지도 않으며,
트로트 대신에 다른 음악들을 고루 찾아 듣습니다.
세상도 저도 팬데믹에는 어느 정도 적응해서
다시 균형을 찾은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당시의 저에게는 그렇게 TV 앞에서
넋 놓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반짝이는 조명이 돌아가고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은
세상에 가득한 고통이 잠시 멈추는 것 같았어요.
중력도, 갑갑한 현실의 우울도, 코로나의 불안도
잊을 수 있을 것처럼요.
사람은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기쁠 때뿐 아니라 슬플 때도
그것들을 필요로 해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예배당이나 절에 가듯
어떤 사람들은 TV를 틀어놓고
그 앞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바흐 시대 이전부터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가도 노래가 있었지요.)
그리고 세상 속으로 돌아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나머지 여섯 날에 힘을 내고,
슬픔을 견디고, 화를 내고,
해야 할 싸움을 이어나갈 지도 모른다고요.
전통음악에 담긴 정서로 '한'을 이야기 할 때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너무 강렬한 개념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조금씩 수긍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꾸 억울하게 죽는 사회에서,
낫기도 전에 또 쌓이는
이 슬픔과 좌절의 응어리는
다 어디로 갈까요? ...
물론 저의 이태원에서도
수많은 즐거운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대체 우리 중 누구에게 그렇지 않겠어요?
혼비씨는 무엇에 기대어서 이 시간을 견디고 있나요?
담요님은 담배가 더 늘진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부디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곁에 두고
단단히 붙드시길 바랍니다. ...
- 황선우, 김혼비 지음, 2023,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 총총 시리즈』,
문학동네, 92-94쪽.
황선우
『멋있으면 다 언니』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쓰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퀸즐랜드 자매로드』를 김하나와 함께 썼다.
팟캐스트 <여둘톡: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제작, 진행하고 있다.
향해가는 것은 언제나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지만,
이번만큼은 설렘이 훨씬 컸습니다.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다정소감』을 쓰고,
『전국축제자랑』을 박태하와 함께 썼다.
못 견디게 쓰고 싶은 글들만을
천천히 오래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