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빵의 두 얼굴과 종교적 의미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포도주는 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적포도주의 선명한 빛깔은
인간의 피와 생명에 대한 신성성을
그대로 상징한다.

포도주는 종교축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기독교 문화를 설명하기 전에,
우선 포도주 축제의 대명사인
바쿠스제[Bacchanalia]를 알아보기로 한다.
로마시대에 이르러 그리스의 주신 디오니소스는
바쿠스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로마 초기에 바쿠스의 숭배는
풍기문란을 이유로 국가적으로 금지되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라났다는 레무스와 로물루스의
건국신화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로마인의 주요 음료는 사실상 우유였다.

초기 로마인은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부인이 몰래 음주를 하는 경우 이혼사유가 되거나,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다. ...
초기 로마인들의 소박하고 질실강건한 정신이
퇴폐풍조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BC 264~146년경이었다.
정복사업으로 식민지의 부와 노예가
로마본국으로 속속 반입되었고,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의 나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취한 상태에서
나신의 남녀들이 쾌락과 난무를 즐기는
현란한 바쿠스제가 다시 도입되었다. ...
그러나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가
열두 제자들과 함께
진지하고 비장한 각오로 함께 나누어 먹었던
영원한 생명의 음식과 음료도
사실상 빵과 포도주가 아닌가?

중세 기독교 문명은 엄숙하고 경건하기 이를 데 없는
카톨릭 미사집전에 포도주를 사용했다.
교회는 포도원을 직접 재배하였고,
사실상 포도주 역사에서 동 페리뇽 같은 수사의
지대한 공헌을 결코 빼놓을 수가 없다.
이 문화사가 로제 샤르티에(R. Chartier)가
설득력 있게 언급한 대로,
문화란 일종의 수용 내지 점유 (appropriation)의
문제이다.
즉 엘리와 민중문화가 일정하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는 하나의 복합체이다.
어떤 계층이 이를 수용하느냐에 따라
엘리트 문화가 되기도 하고,
민중문화로 정착되기도 한다.
환언하면 이 포도주라는 문화대상을
아폴론적 인간형(理性)이 택하느냐.
디오니소스적 인간형(感性)이
선택하느냐(input)에 따라,
결과(output)는 이처럼 상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외견상 경건하기 이를 데 없는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도
바쿠스적 요소가 완전히 종적을 감춘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화되기 이전의 이교적인 민간축제의 전통에 따라,
... 당시에도 여전히 바쿠스적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프랑스인의 포도주 문화를 언급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빵이다.
옛날부터 프랑스인은 빵을 좋아하고(panivore),
섬나라 영국인은 육류(carnivore)를 즐겼다.
당시 영국과 함께 유럽을 주도하는 강대국이었던
프랑스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농산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프랑스의 자연은 그야말로 천혜의 보고이다. ...
토양이 척박한 영국에서는 그나마 목축업이 적당하고,
비옥하고 평평한 평야지대로 이루어진
프랑스 지역에서는 밀이나 포도농사가 제격이다. ...

프랑스 혁명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인
빵(즉 빵의 결핍),
특히 오븐에서 갓 구워낸 흰 빵(pain blanc)은
혁명의 진원지였던 파리시민의
자랑이자, 행복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중세에 흰 빵은 거의 의약과
동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강한 빵의 애착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감자라는 새로운 식품이 보편화되기에는
비교적 오랜 시일이 걸렸다.
원래 요리에 무신경한 영국인은
자기네가 좋아하는 고기에
뜨거운 감자요리를 살짝 곁들이면 그만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워낙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인의 보수적인 기질도 단단히 한 몫 하였지만,
고기와 감자에 비해 빵과 감자의 요리궁합이
아무래도 어색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프랑스인은 식후에 디저트로
달디단 과일파이나 푸딩, 또는 치즈를 먹는다.
치즈를 먹을 때는 그냥 먹기도 하지만,
대개 프랑스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바게트(막대기 빵) 조각이나,
호두나 아몬드를 섞은 호밀빵에 치즈를 발라먹는다.
그리고 식사 전에 주문했던
남은 포도주 병을 모두 비우고 나서,
마지막으로 커피나 차를 주문한다.
- 김복래, 김정하, 김형인, 조관연, 최영수지음,
2005, 『와인에 담긴 역사와 문화』,
북코리아, 98-101쪽.
김복래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
파리 제4대학(소르본)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경제 성장의 비교연구’로
석사 논문을 썼다. 이후 파리 제1대학으로 옮겨,
‘파리 소비 문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은 당시 아날학파의 유행 사조인 물질문명사,
도시사, 국가의 통치학인 통계사, 경제사 외에도
소비를 둘러싼 경제사상사(자유, 통제),
소위 ‘망탈리테사’(histoire des mentalites, 심성사)까지 총망라한 주제이다.
현재 국립안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유럽문화와 유럽경제, 또한 미식사와 같은 문화사로
강의를 하고 있다.
김정하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시에나국립대학교
역사학(중세문헌학, 기록물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남유럽의 전통기록물관리』, 『기록물관리학 개론』,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인드로 몬타넬리의 『로마제국사』,
마리아 아쑨타 체파리의 『중세 허영의 역사』,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공역)와 『실과 흔적』,
크리스토퍼 듀건의 『미완의 통일 이탈리아사』,
체사레 파올리의 『서양 고문서학 개론』, 등이 있다.
김형인
미국 뉴멕시코 대학교 사학과에서 노예제도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현대 미국사의 흐름》, 《미국의 정체성》 등이 있다.
조관연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민족학(문화인류학)을 전공하였으며,
1995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한신대학교 디지털문화콘텐츠학과 등을
거쳐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화 속의 동서양 문화』, 『시각콘텐츠 들여다보기』(2006),
『영상인류학 이론과 방법론』(2016), 『정보혁명』(2017) 등의 저서가 있다.
주요 관심사는 문화변동, 시각이미지 그리고 로컬리티 연구이다.
최영수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중남미지역연구학과 졸업
포르투갈 국립 리스본대학교 문과대 수료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서양사과정 졸업
(이베리아반도사 연구로 문학박사학위)
미국Delaware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원장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총장
한국 포르투갈-브라질학회 회장
한국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