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공존하고 상생하는 사회를 위한 생각들
이주민의 증가는
그 사회의 문화적 상황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
이러한 타자 혹은 타 문화와의 만남이라는 상황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주류 사회 구성원과 이주민에게
큰 축복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타 문화와의 만남이 그 사회에서
문화 다양성의 형성으로 이어질 때
그 사회는 훨씬 더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

한국에서 이주민의 수가
전체 인구의 2퍼센트에 달하면서
한국도 이제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동시에 이주민에 대해 인종차별적 인권침해 사례가
적잖음을 지적하며
한국이 다문화 사회인가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기도 한다. ...
다른 여러 문화권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이주민이 늘어남과 동시에,
그들과 함께 여러 문화가 한국 사회에
유입되었다는 점에서,
즉 한국 사회에 여러 문화가 있다는 현상 기술적 측면,
현존하는 것의 측면에서
다문화 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면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다문화 사회란 다인종·다민족 사회가
실제로 지칭하는 바와 별로 다르지 않은데,
실제 인종 혹은 민족 단위로 단일문화를 상정하는 것이
앞에서 설명했듯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현실을 설명하는 데도
적당하지 않다는 점에서
별로 정확한 개념이라 할 수 없다.
다문화 사회를 문화 다양성이 존중되어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상생하는 사회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에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문화 다양성의 존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문화간의 만남이란 문화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만남이며,
다양한 문화간의 소통이란 여러 문화권에서 온
사람 사이의 소통이다.
낯선 문화와의 만남이란 곧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다.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낯선 문화, 낯선 사람 혹은 이방인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이를 위해 '이방인의 해석학
(Hermeneutik der Fremden)'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여기서 첫 번째 과제는,
'내'가 낮선 자로서의 타자를 만날 때
'내' 속에 흔히 무의식적으로 상정되어 있는
나와 타자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성찰하는 일이다.
동화주의적 사고방식의 근저에는
타자를 나와 같아야 하는 존재로 상정하는,
타자와 나의 관계를 A=A로 보는
동일성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유럽의 역사 · 예술사 · 인류학·철학·소통 이론들을
연구하며,
그 속에서 유럽이 낯선 이들을 어떻게 만나왔는지를
유형화한
독일의 선교 신학자 준더마이어는,
동일성 원리의 극단적 원형을 식민주의적 타자관에서
찾는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향해 떠날 때,
그는 앞으로 만나게 될 '인도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떠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인도인'들은 당연히 기독교인이 될 것이며
에스파냐 왕의 신민이 될 거라고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서도,
자신이 그들의 언어를 배운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 중 몇몇을 에스파냐로 데려와
에스파냐어를 가르치고자 했을 뿐이다.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중남미 식민지 피지배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흔히 둘 중 하나였다.
그들을 가르치고 개화시켜
'나'처럼 인간이 되게 하든지,
아니면 인간이 아닌 사물로 분류하여,
사고팔 수 있는 노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선
인간으로서 생존할 권리조차 박탈해버린 것이다.
오직 A만을 살아남게 하는 사회,
A와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는
다양성이 아닌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주류의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다.

일제 식민지 정책으로서, 일본식 성명 강요,
조선어 금지, 신사 참배 강요 등이
이러한 동일성 논리에 입각했는데,
당시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한국은 이러한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타 문화권에서 온 결혼 이주민 여성들에게
그들의 음식, 그들의 언어, 그들의 예절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한국의 음식, 언어, 예절만을 강요하는 데는
이러한 동일성 논리가 깔려 있다.
《말해요. 찬드라》라는 책에는,
네팔어로 이야기하는 네팔인 여성을
정신이상자로 오판해
6년을 정신병원에 감금했던 실화가 소개되어 있다.
-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엮음, 2009,
『다문화 사회와 국제이해교육』, 동녁, 97~99쪽.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Asia-Pacific Centre of Education for International Understanding)은
유네스코 아태지역 회원국 47개국과 함께
"평화의 문화를 위한 교육"의 이념 안에서
국제이해교육을 증진·발전시키기 위해
유네스코 본부와 대한민국 정부 간 협정에 의해
2000년 8월에 설립된 유네스코 카테고리Ⅱ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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