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최선을 다하나요? 은퇴 후에 후회합니다.
"후회요? 아무 데나 최선을 다한 점이죠."
'은퇴한 후에 가장 후회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내 질문에 대한 P씨(57세)의 대답이었다. ...
"직장 다닐 때 술자리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어요.
술 잘 마시고 의리 있고,
'스킨십' 좋은 사람으로 통했죠.
잔소리하는 아내한테 '술자리에서만 오가는
고급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고
큰소리치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말짱 헛것이더군요." ...
A플러스급 고급 정보는 술자리에 떠돌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 엄청 시간이 걸린 셈이죠."
...
"은퇴하고 보니까 내 딴엔 열심히 한다고 한 것들이
한결같이 쓰잘데없는 것들이었어요. ...
엉뚱한 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느라
정작 소중한 걸 놓쳐버렸어요." ...
"일에 올인하다 보니까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할 말도 없고, 뭘
하며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할지 너무 막막하고....
하지만 그다음 말은 조금 달랐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너무 없었다는 점이에요.
나한테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해보는 일 없이
그냥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지금 멍할 수밖에요.
...
아무 데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 중에는
남의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 많다.
또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유형의 사람도 많다. ...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시간은 빨리 흘러가는데,
내 일도 다 못하면서 누가 부탁하는 일이 있으면
그 일부터 해줬으니까요" ...
"물론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에요.
사람 좋다'는 소리 듣는 걸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내 딴엔 계산도 있었어요." ...
"남들이 일하는 만큼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남보다 더 나은 실적을 올리려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었죠“
...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고 실적이 올라간 것도
아니라는 점이죠.
일이 너무 과중하니까 실적이 오르기는커녕
벼랑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결국엔 다른 사람들도 실망시키고,
나 자신도 기진맥진 지쳐버린 거죠."
...
"아니요"라고 말하는 기술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어요.
다른 사람이 부탁하는 일은 물론이고,
내 일에 대해서도 그래요.
그 일을 할 만한 시간이나 실력이 부족할 때,
다른 사람한테 위임하는 기술도 필요하더군요."
...
아무 데나 최선을 다하는 건
'인생 60세 시대'에나 통하던 미덕이다.
인생이 길지 않으니 장기적인 계획도 필요치 않았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면 충분했던 시대 말이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아도 시간은 빨리 갔고,
일을 그만둔 후엔 남들 다 하는 해외여행이나
한두 번 다녀오고,
더 나이 들면 잠깐 앓다가 죽으면 되었던 시대의
얘기다. ...
하지만 '100세 시대'는 그렇지 않다.
인생은 길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아무 데나 최선을 다한다면, 길고 긴 노년의 세월을
과거에 매인 채 후회하면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
- 한혜경 지음, 2014,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은퇴남 1000명이 들려주는
"은퇴 순간"의 진실』, 아템포, 57~63쪽.
한혜경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 학위와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대학에서 노인복지를 연구하며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문화일보〉, 〈여성신문〉, 〈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썼으며,
미래에셋투자 및 연금센터에 ‘나의 은퇴일기’를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은퇴의 말》 《은퇴의 맛》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등이 있다.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후 정년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