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메모주의자가 되었나
나도 메모의 화신이었던 때가 있다.
취업 준비를 앞둔 시점이었다.
갑자기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고 결심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는데
그게 하필이면 서점 계단이었다.
...
* 서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데,
조르바가 두목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두목, 당신이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주십시오.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께요."
이 문장이 원인이었다.
이 문장이 나에겐 해방이었다.
나는 밥을 먹고 하는 일이 없었고
고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날 나는 그 당시 나를 자기연민에 빠지게 했던 비애,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나의 비애는 아무것도 안하고 나를 아주 괜찮은 사람으로
남들이 알아봐주길 원했다는 것이다.
나의 비애는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할 만한그 어떤 일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 초라함이 비애의 정체였다.
나는 이것을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채 눈물로 인정했다.
"나는 너무 후져."
사실 나는 자주 과대평가되었다.
실제의 나보다 더 잘나 보이고 장차 더 잘해낼 것으로 보였다.
나는 '아무튼, 기대주'였다.
...
물론, 나도 그런 시선을 우월감 속에 은근히 즐겼다.
그런 태도를 가르키는 단어가 있다.
허영심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들통이 나서 망신당하지 않을까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
기대받는 것 만큼 '진짜로' 잘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또한 내게는 있었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잘하고 싶었다.
...
그때 나는 더는 무의미하게 살고 싶지 않았고,
무의미하게 살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믿었다.
...
어느날 정말로 '갑자기' 결심했다.
달라지기로.
뭔가를 하기로.
그만 초라하게 살기로.
...
남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도 그만뒀다.
삶이 간결해져 좋았다.
그 대신 앞으로 뭘 할까만 생각했다.
세상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거기 가서 그 일을 잘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세상이 필요한데 세상도 과연 나를 필요로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때 나는 처음으로 메모의 화신이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한 메모를 했다.
문구점에 가서 가장 두꺼운 노트를 몇 권 샀다.
거기에 책을 읽고 좋은 문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에게 도움이 될 생각들을 꿀벌이 꿀을 모으듯 모았다.
- 정혜윤 지음, 2020, 『아무튼, 메모』, 위고, 3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