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회화]을 감상하는 네 가지 방법
그림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
먼저 그림이 어떤 목적에 쓰였는지를 물을 수 있다.
생동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들소의 그림은
만 오천년전 스페인의 한 동굴 천장에 그려진 것이다. ...
우리의 동굴 화가는 동굴 안에다
들소의 모습을 잡아두면
진짜 들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지 모른다.

[아래 그림은 나사로가] 소생하는 이야기를
더 없이 명료하게 묘사한다.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던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자주색 옷을 입은 예수는 그윽한 손길로 나사로를 부른다.
기적을 보기 위해 '둘러선 사람들' 중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한 손을 올리는 사람도 보인다. ...
나사로의 일화를 아는 사람들은
그림의 주제를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교회 장식의 일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목적에 쓰였을까?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6세기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
구구든지 알아볼 수 있는 이런 그림들을 보면서
문맹자도 성경의 가르침을 깨우칠 수 있었다.
...

그림을 바라보는 두 번째 방법은 그림을 낳은
문화에 대해서 그 그림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위의] 동굴벽화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동굴을 거쳐로 삼았고
들짐승을 사냥했지만 정착생활을 하거나
농사는 짓지 않았던 초기 인류의 생활상을 ...
우리에게 알려준다.
6세기에 그려진 기독교의 모자이크화에는
소수의 선각자가 다수의 무지몽매한 대중을 교화하던
가부장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기독교 초창기에 아직은 낯설기만 했을
이 새로운 종교의 의미들을 사람들이
빠르게 흡수할 수 있도록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최대한으로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을 거라는 속사정도 이 그림에서 엿볼 수 있다.
...
그림을 보는 셋째 방법은 그 그림이
얼마나 사실적인지를 묻는 것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은 화가들의 오랜 염원이요
숙원이었다.
특히 고전 고대기(BC 600년경-300)와
[14세기부터 싹튼]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림을 실감나게 그린다는 것은
화가들을 고민에 빠뜨렸다.
아득한 옛날부터 그들은 이런 고민를 해결하느라
별별 상상과 처방을 다 동원했다.
하지만 모든 화가가 이런 고민과 씨름한 것은 아니다.
화가 자신이 애당초 자연을 모방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
뜻이 없었을 경우,
자연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보는 우리의 잣대만으로
그림을 평가한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자연은 안중에도 없고
그림 안에서 자신의 표현 가능성을 추구하는
현대 화가의 작품 역시도 자연과 얼마나 비슷한가라는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

그림을 보는 넷째 방법은
디자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림 안의 패턴을 만들어 내는 데
형태와 색채가 어떻게 동원되었는지 따져 보는 것이다.
[위의 그림] 브론치노의 <알레고리>를
이런 각도에서 보면, 그림에서 중심 쌍을 이루는
비너스와 큐피드가
연한 색깔로 이루어내는 'L'자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또 하나의 L자를 뒤집어서
배치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
- 수잔 우드포드 지음, 이희재 옮김, 2000, 『회화를 보는 눈』, 열화당, 7~14쪽.
수잔 우드포드 Susan Woodford
미국에서 태어난 수전 우드포드는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국에 거주하며 대영박물관 British Museum에서 예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다양한 저술이 있으며,
2003년에 고대 그리스 연구로 Criticos Prize를 수상했다.
이희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독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영국 런던대학 SOAS(아시아아프리카대학)에서 영한 번역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 《번역의 모험》 《번역의 탄생》 《번역전쟁》 《국가부도경제학》이 있다.
옮긴 책으로 《마음의 진보》 《히틀러》 《헬렌을 위한 경제학》 《미완의 시대》
《몰입의 즐거움》 《소유의 종말》 《문명의 충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