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문학, 예술

일본인의 배수진(背水陣), 중국인의 배수진(背水陣)

후안조 2022. 9. 12. 02:52
728x90
반응형

병법 <36계> 중에서 背水之陣(배수지진)*에 대한 일본 학자의 해석
     *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한신이 쓴 기책 - 강을 등지고 싸우다

<나가시마(長嶋) 거인**이 배수진으로 경기장에 나가다>는

따위의 표제가 스포츠 신문의 톱기사로 잘 나온다.
그처럼 <배수진>이라는 말은 널리 쓰이고 있는 듯 보인다.

     ** 나가시마 시게오(長嶋 茂雄)감독이 맡고있던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트

         야구팀을[1975~1980, 1993~2001] 말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나가시마 감독, 출처: 위키백과


그 뜻은 물론, 궁지에 몰린 사람이 죽음을 각오하고 반격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중국인보다는 일본인에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왜냐하면 궁지에 몰린 자의 비장함이 여지없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인다.

중국인에게는 궁지에 몰렸다는 비장감이라는 것이 없다.
적어도 일본인처럼 비장감에 자기도취되는 일이 없다.

첫째로는 중국인이라면 그런 궁지에 몰리기 이전에 어떤 수로든지 손을 써서,
빼도 박도 못할 그런 상황까지 몰리지 않게끔 행동했을 것이다.

어쩌다 운이 좋지 않아 막바지에 몰렸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일본인처럼 비장감을 뿜어내면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비교적 담담한 심정으로 정황을 판단해 가면서 천천히 탈출책을 생각할 것이다.

일본인을 동(動)이라면 중국인은 정(靜),
일본인을 강(剛)이라면 중국인은 유(柔)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것은 <배수지진(背水之陣)>의 고사를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옛날,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기> 이야기로 유명한 저 한신(韓信)이라는 무장이 있었다.
이 한신이 한왕[漢王] 유방의 명을 받아 조[趙]나라를 쳤을 때의 일이다.***
한신의 [군사는] 불과 이 삼만, 이에 대해 [조나라 군사는] 20만을 자랑하고,
더구나 견고한 요격태세를 갖추어, [정면 대결은] 불가능했다.

 

회음후 한신, 출처: 위키백과


     *** 정형전투(井陘之戰): 중국 초한(楚漢) 쟁패기 시절

           벌어진 한(漢)나라와 조(趙)나라의 전투 .
           당시 한나라군은 원정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다가

           병력도 분산되는 등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조나라군은 수 십만에 이르는 병력으로

           침공하는 적을 막는 유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나라의 전략적 미숙과 양측 지휘관의

           역량 차이로 인해 조나라가 패하여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이 승리를 계기로 한신(韓信)은 제(齊), 연(燕) 등

           북방의 나라들을 차례로 복속시켰고,

           이후 초한전쟁은 한나라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이 전투는 한신이 거둔 최대의 군사적 성공이자
           초한전쟁의 향방을 가른 계기가 되었다.

한신은 총공격 전날 밤, 2천의 경기병을 선발하여 병사 전원에게 붉은 깃발을 들리워서
조군의 측면에 있는 산 기슭에 [매복]시켰다.

<잘 들어라. 내일의 싸움에서는 우리는 거짓으로 지는 척, 도망간다.
적은 성을 비운 채 우리를 추격해 올 것이다.
너희는 그 틈에 성내로 들어가 [조나라의 깃발]를 빼버리고
[한나라의] 붉은 기를 꽂는 것이다.>

 


그리고는 1만의 병사를 뽑아, 조군의 전면을 흐르는 강을 등지고 포진케 하였다.
이런 태세를 갖추어 놓고 나서 그는 동이 틀 무렵, 스스로 본대를 이끌고 조군을 공격했다.
조군도 성문을 열어 응전해 왔다.

한신을 기회를 보아서 퇴각을 명령하고 재빨리 강가의 진지로 후퇴해 들어갔다.
조군은 일제히 성을 나와 맹렬한 추격을 개시하였다.
한신의 군은 강을 등지고서 서 있는 까닭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니 우세한 조군도 무진 애를 썼다.

그 동안에 한신의 별동대는 적의 빈 성을 점령해 버렸고
성 위에는 2천의 붉은 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속은 줄 깨달은 조군 진영에서 그 순간 동요가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정면의 적을 공격하다 못해서 물러서려고 하니
본영이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자 조군은 지리멸렬이 되어 흩어지고 한신의 작전이 승리했다.

싸움이 끝난 뒤 휘하 부장들이,
<병법에는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놓고 싸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싸움은 물을 등지고 이겼습니다.
우리게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라고 물었다.

한신은 이렇게 답변하였다고 한다.
<아니, 아니, 이것도 훌륭한 병법이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의 장소에 놓여야 비로소 살수 있다》고도
병서에는 씌여 있지 않은가.
그것을 응용한 것이 이번의 배수진이다.
사실 말이지, 우리 군은 마구 긁어모은 일시적 군대인 까닭에
안전한 곳에 놓으면 모래말처럼 흩어져 버릴 염려가 있다.
그래서 일부러 죽음의 곳에 던져 넣었던 것이다.>

 

초한전쟁을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 초한전기(楚漢傳奇, 2012)


이로부터 <배수진背水陣>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것으로 분명하듯이 한신의 경우는,
나가시마 거인처럼 궁지에 몰려서 배수진을 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전략이다.
한쪽에는 다른 도리가 없고, 이쪽에는 마음껏 여유가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중국인에게는, 끝까지 몰려서 <배수진>이 되어 버리는 것은 졸책 중에서도 졸책이다.
그런 꼴이 되기 전에 수를 쓴다는 것 - 이것이 중국인의 발상이다.


모리야 히로시[守屋洋] 지음, 진웅기 옮김, 1981, 『지혜로운 인생』, 일월서각, 101-103쪽.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