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마음의 때를 벗깁니다
사람 말소리가 끊어진 목욕탕에 앉아 있을 때가 있다.
내 경험 상 평일 저녁 8시 이후의 목욕탕이 주로 그렇다.
혼자 목욕하러 온 분들은 말없이 몸을 씻고 때를 민다.
그런 분들이 만든 묵직한 침묵, 그 침묵이 주는 안정감을 누리고 있으면
남의 입에서 나와 내 귀로 들어온 독한 말들이 몸 밖으로 천천히 빠져나간다.
탕에 앉아 묵은 각질을 불리며 마음에 낀 말의 때도 함게 녹이곤 한다.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을 더는 곱씹지 않고 땀과 함께 내보낸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인생 극장의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다.
그 무대 위에서 실언, 실수, 아차차 싶은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내용은 나쁘지 않은데 표현된 형식이 부적절한 말부터
가래침 처럼 퉤 내뱉은 말까지 좋지 않은 말을 많이 들으면 마음에 때가 낀다.
중국 고사에 허유가 부귀영화를 마다하며 귀를 씻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도 이상의 독한 말은 귀를 씻는다고 빠져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찬찬히 곱씹게 되고, 그럴수록 기가 막히는 경우가 더 많다.
나 또한 타인들의 귓가에 그런 말들을 흘렸을 것이다.
몇 번은 실수였을 것이고 또 몇 번은 무지로 인한 실례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 어리석은 말은 남의 말처럼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남에겐 냉정하고 나에겐 관대하기 때문이다.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보면 자기반성은 커녕 무념무상에 가까워지기 쉽다.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지 않으면 나의 흉허물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5분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지만
시간에 쫒기면 조금씩 뒤로 밀리게 된다.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을 때,
피정(避靜) 또는 리트릿(retreat)을 가는 마음으로 목욕 도구를 챙긴다.
자기반성이 과해 자학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평소보다 천천히 목욕탕 안에 머문다.
마음의 부드러운 결을 되찾을 때까지 나를 씻긴다.
내 딴에는 실수를 줄이려고 애썼을 것이다.
책을 읽고 조언을 들으며 부족한 상식을 쌓으려고 노력하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말로 먹고 사는 처지, 뭐라도 아는 척해야 하는 선생으로 일하다 보니
누군가의 마음 언저리에는 내 말이 가시가 되어 박혀 있을지 모른다.
"가시 좀 빼주세요"하고 말을 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런 말을 듣는다면 나는 뒤늦게라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어설픈 농담과 과장된 표현, '정치적 올바름'이 부족했던 단어가
너를 아프게 할 줄 몰랐다고 사과할 것이다.
...
중국에 살던 시절 마사지를 맡을 때 손으로 발을 꾸욱 누르면서
"통[痛](아픈가요)?" 하고 물어주던 마사지사가 그리웠다.
질문하지 않고 상대방의 상태를 어찌 알까?
함부로 예단하지 않으려면,
남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들으려면,
중간중간 질문을 해야 한다.
"통[痛]?"이라고 물어야 상대와 '통[通]할' 수 있다.
이국의 마사지사들은 중국어를 열 마디도 못하는 나와 통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이에게 내 발을,
내 묵직한 삶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정혜덕 지음, 2020, 『아무튼, 목욕탕』, 위고, 97-1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