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라이프스타일

고양이에 대한 프랑스 철학자의 단상

후안조 2022. 9. 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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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물루[Le Chat Mouloud]

 

짐승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짐승들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그들은 대자연과 다시 접촉하면서 자연 속에 푸근히 몸을 맡기는 보상으로

자신들을 살찌우는 정기를 얻는 것이다.

 

 

그들의 휴식은 우리의 노동만큼이나 골똘한 것이다.

그들의 잠은 우리의 첫사랑만큼이나 믿음 가득한 것이다.

...

 

황혼녁, 대낮의 그 마지막 힘이 다해 가는 저 고통의 시작이면

나는 내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고양이를 내 곁으로 부르곤 했다.

그 불안감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으랴?

나를 진정시켜 다오하고 나는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밤이 다가온다.

밤과 더불어 내게 낮익은 유령들이 깨어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세 번 무섭다. 

해가 저물 때, 내가 잠들려 할 때, 그리고 잠에서 깰 때.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나를 저버리는 세 번....

허공을 향하여 문이 열리는 저 순간들이 나는 무섭다. -----

 

 

짙어가는 어둠이 그대의 목을 조이려 할 때,

한밤중에 잠깨어 나는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를 가늠해 볼 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생각이 미칠때,

잠이 들면 그대로 돌처럼 굳어지게 할 때,

대낮은 그대를 속여 위로한다.

그러나 밤은 무대장치 조차 없다

 

물루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나는 그의 몸 위에 내 시선을 가만히 기대어본다.

그러면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믿음직스러워졌다.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그의 현전(現前).)

...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대양속의 소금같이, 허공속의 외침같이, 사랑속의 통일같이,

나는 내 모든 겉모습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

 

물루는 행복하다.

세계가 저 혼자서 끝없이 벌이는 싸움에 끼여들면서도

그는 제 행동의 동기가 한갖 환상일 뿐임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놀이를 하되 놀고 있는 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나다.

조그만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

 

인간들을 서로 구별지어 주는 것은 그들의 이른바 사상이란 것이 아니라 행동이다.

이 점은 고양이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아도 곧 알 수 있다.

사람을 싫어하는 이들과 이기주의자들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행동인은 고양이를 좋아할 시간이 없다.

...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1997, 『섬, 민음사, 36-37, 41-44, 58.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는 1898년에 파리에서 태어나

브르타뉴에서 성장했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22년에 철학 교수 자격증을 얻은 뒤 아비뇽, 알제, 나폴리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누벨르뷔프랑세즈(NRF)등에 기고하며 집필 활동을 했다. 1930년 다시 알제리의

고등학교에 철학 교사로 부임한 그르니에는 그곳에서 졸업반 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만났다. 1933년에 그르니에가 발표한 에세이집 을 읽으며 스무 살의 카뮈는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상기시켜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고, 몇 년 뒤 출간된 자신의 첫 소설 안과 겉(1937)을 스승에게 헌정했다.

포르티크 상, 프랑스 국가 문학 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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