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당신... 언제 책을 읽을 것인가?
언제 책을 읽을 것인가?
이건 중차대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떠안고 있는 만인의 고민이기도 하다.
책 읽을 시간이 고민이라면 그만큼 책 읽을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도, 학생들도, 어른들도.
다들 살아가는 일에 치여 책 읽을 짬이 없다.
생활은 독서를 가록막는 끝없는 장애물이다.
"책이요? 읽고야 싶지요. 하지만 직장 다니랴, 아이들 챙기랴,
집안일 하랴, 도무지 짬이 나질 않으니....."
"당신은 책 읽을 여유라도 있으니 좋겠군요!"
그런데 어째서 어떤 여자는 일하고, 장보고, 아이들 키우고, 운전하고,
남자를 셋이나 사귀고, 치과에 다니고, 다음 주면 이사를 가야 하는 와중에도
틈틈히 책 읽을 시간이 나는데,
어째서 어떤 남자는 단출한 독신에 연금가지 받아가며 하릴없이 빈둥거리는데도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걸까?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나 사랑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대체 어디에서 훔쳐낸다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에서다.
그 '삶의 의무'의 닳고 닳은 상징물인 지하철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이 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한다.
만약 사랑도 하루 계획표대로 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랑에 빠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들 사랑할 시간이 나겠는가?
그런데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할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도 책 읽을 시간을 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일 때문에 좋아하는 소설을 끝까지 읽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독서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효율적인 시간 운용과는 거리가 멀다.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인 것이다.
문제는 내게 책 읽을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렇다고 아무도 시간을 가져다 주지 않을테니),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
어떤 작품은 어느정도 나이가 들 때까지는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좋은 술과는 달리, 좋은 책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좋은 책이 책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동안 나이를 먹는 것은 바로 우리다.
그 책을 읽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새롭게 시도한다.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마침내 책과의 해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그 하나요,
실패를 거듭하는 경우가 또 하나다.
재차 실패했을 경우, 언젠가 다시 시도해볼 수 있고,
거기서 그만 주저앉고 말 수도 있다.
...
인간은 살아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얽어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는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만큼이나 불가사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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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 지음, 이정임 옮김, 2018, 『소설처럼』, 문학과 지성사, 108-111쪽.
1944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아시아.유럽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 니스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26여 년간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73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말로센 시리즈’와
어린이 책 ‘까모 시리즈’에서 보여준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넘치는 표현으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으며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스터리 비평상(1988년), 리브르앵테르 상(1990년),
르노도 상(2007년)을 수상했다.